“현대도시의 깊은 밤에 수놓는 불빛들은 형(形)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색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형(形)이 색(色)보다 좀 더 효율적인 의사 전달의 수단이지만
색의 표현적인 에너지는 결국 형에 의해서 얻을 수 없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빛이 무엇인가?’ 에 관한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빛은 생명의 원천이며 현상임과 동시에 생명 그 자체가 된다. 태양 없이는 빛이 없고, 빛 없이는 생명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빛없이 영위되는 인류의 문화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빛에는 대상을 밝게 하는 기능 외에 자연 세계의 존재를 느끼는 것을 일깨우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빛은 생명의 충실과 청정함, 자유, 희망, 기쁨을 나타내기도 하며, 또한 보는 작용의 매체, 대상, 사상의 통찰, 세계인식과 그 힘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의 빛은 신성을 의미하고, 성스러움의 비유는 종교의 중심이 되며 인간은 빛에 지각함으로써 생명과 영성(靈性)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빛이 갖는 의미는 이처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가들에 의해 자연을 밝고 어두운 공간으로 나누는 미적인 표현요소로 다루어졌다.
작가 문효주는 자연의 빛이 사라지고 인공의 빛과 조명이 가득한 도시의 밤 풍경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난 공간과 감추어진 공간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백프라자갤러리 기획으로 마련되는 《문효주 초대전》은 ‘the Urban Scape Night(도시의 밤 풍경)’라는 주제로 오는 12월 10일(화)부터 15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 된다.
그녀의 밤 풍경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닌 자아의 감성과 교감을 이루는 주관적인 대상으로 보고, 인공조명의 빛들과 그것에 의해 노출된 거대한 도시 이미지를 여과 없이 나타낸다. 바쁜 일상에서 밝은 햇빛이 가득한 자연을 관조하며 사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늦은 퇴근 시간 차 안에서 바라본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시각적 유희를 채워나간다. 빛의 아름다움이 발산되는 밤이면 낮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경험하게 되고 이는 어둠, 감정, 변형 등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변화를 찾는다. 인공조명은 밤의 소멸을 이끌고 낮의 영역을 확장해주며 작가의 무한한 감성과 상상력을 끌어낸다. 작가가 이처럼 도시 야경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가족들과 함께 요식업체를 운영하며 생긴 시간의 공백을 저녁 시간을 이용해 메워나가며 창작하는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젊은 시절 경제적 좌절과 성공을 일찍이 경험했던 작가에게 자연의 빛이 가려지고 인공조명으로 가득 찬 도시의 밤 풍경은 마치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을 고스란히 소환해 내는 듯 여겨졌다. 어둠의 시간 속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깊은 침묵 속 도시의 야경은 더 많은 애정과 연민이 가득하다.
그녀의 작품은 높은 곳에서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파노라마식 풍경과 도로 한 가운데 차창 넘어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시점은 넓은 경치와 깊은 공간감이 주는 풍경화의 구도적 특징으로 이해된다. 멀리 불빛의 군집이 그려내는 화려한 도심과 어둠이 가득한 주변의 적막감은 깊은 밤에만 느껴보는 도시의 새로운 모습들 이었다. 강변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라이트 라인을 묘사해 밤 풍경을 극대화하고, 호수에 비친 고층 상가의 현란한 네온 불빛은 도시의 규모를 가늠케 해주며, 어두운 배경 위에 수직과 수평의 간격으로 겹치고 나열된 불빛들은 복잡한 도시의 입체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인적인 드문 골목길을 외로이 밝히고 있는 가로등과 눈 덮은 외진 공원에서 마주하는 조도 낮은 불빛은 도시가 갖는 양면성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도심 한가운데 빛나는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빛은 작가 내면에 내재한 희망의 상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도시 야경에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온기,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런 관조적 시선은 대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관찰자적 관점을 넘어 자신의 내밀한 감성을 켜켜이 쌓아 함축적 밀도감을 더 해준다.
동․서양 미술사 속에서 빛은 언제나 예술의 중심에 있었다. 구상회화가 갖는 주된 소재는 자연이며 작업의 주된 관심사는 작업 대상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빛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강한 인상을 나타내게 한다. 명암으로서의 빛과 그림자는 작품의 주제를 부각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처럼 충실한 묘사와 명암으로서의 빛과 그림자는 신고전주의의 작품과 같은 효과를 낳았다. 신고전주의자들의 빛이란 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밝음과 어둠이었으며 그것은 색채와 무관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색채는 부차적인 것으로 경시되었다. 그들의 그림은 약간의 색소를 빼면 선을 중시한 데생과 같아져 보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주의는 당시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사회의 전반적 부분뿐만 아니라 예술적 측면에서도 빠른 변화를 이끌었다. 실증주의와 사실주의 영향을 받아 시각적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미술운동으로, 자연광 아래 자연스럽게 바뀌는 순간적인 모습의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의 변화를 표현 하기 위해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언제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한편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빛은 물체에 비춰지는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형상이 된다. 이 경우, 빛은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빛에 의한 정신적인 힘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강렬한 빛이 공간에 쏟아져 내려오는 효과로 신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것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효과를 낳고, 암실 내부에서 보면 ‘어둠 속에 들어와 밝게 비추는 빛’을 의미한다. 더불어 근대 기독교 건축에서 자연의 빛의 역할은 인공조명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빛의 의미를 더욱 극대화 시키고 있다. 신을 매개로 존재하는 종교 공간에서 빛의 역할은 신성이나 영성과 함께 순수, 초월, 예술 등의 의미와 결합해 포괄적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이처럼 자연의 빛과 인공조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술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왔고, 종교적 의미를 넘어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 문효주의 작품 속 밤 풍경의 불빛은 도시의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어 주며 어둠을 이겨내는 긍정적 개념으로 새로운 생명의 힘을 얻는다. 정지되고 어두운 공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진취적 순간으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작가는 수없이 반복된 시행착오를 이겨내며 삶의 방식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오늘도 일과를 마친 늦은 귀갓길,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밤의 풍경의 황홀함에 빠져든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를 가슴 가득 마시며 마음속에 찬연히 빛나는 희망의 불빛에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다.
서양화가 문효주는 이러한 도시 야경의 화려한 조명 속에 숨겨진 빌딩 숲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낸다. 불빛이 뿜어내는 색의 흐름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어둠 속에 가려진 도시의 형태들을 어렴풋이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회화의 깊이를 더해주는 양감이 되는 셈이다. 이번 《문효주 초대전》에는 도심야경을 주제로 표현된 회화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