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주제로 백자 세라믹을 소재로 제작한 조형 박스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다”
1998년 일본 긴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후 한국에서는 첫 개인전을 마련하는 도예가 심정보는 '꽃(FLOWER)’을 주제로 한 백자 세라믹 조형 박스에 절제된 미감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통 도자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시각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사유를 선보일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27일(화)부터 6월 1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된다.
백자의 고요하고 순백한 표면 위에 형상화된 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으며, 이는 곧 '기억'과 '보존'이라는 박스 구조의 내적 의미와 연결된다. 작가의 조형 박스는 단순한 수납의 기능을 넘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가진 공간적 구조로서 존재한다. 이는 생명과 시간,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 사이의 조형적 긴장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꽃’이라는 유기적 형상은 백자의 인공성과 충돌하거나 조화를 이루며, 그 자체로 생명과 정적 사이의 미학적 균형을 상징하는 존재로 표출된다.
이번 전시에서 도예가 심정보는 자연의 꽃과 나무의 생명력을 조형의 기본 요소인 선으로 표현하고, 흙이 들려주는 자연의 깊이와 고요한 시간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림 그리기와 같은 창작 행위를 통해 자연의 섬세한 순간들을 도자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재해석하며,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드는 도자예술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했다. 흙을 다루는 과정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명상이다. 우연한 아름다움과 계획된 형태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깊은 울림을 도예가의 감성으로 표현해 현대적 미의식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도자는 태초의 흙이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조형예술이다.
도예가 심정보는 1990년부터 일본 간토 지방의 도치기현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시코(益子, Mashiko)’ 에서 10여년을 생활했다. 도예에 큰 열정을 품은 마시코는 인구가 약 2만명에 불과하지만, 도예의 세계에서 이곳이 갖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대표적인 전통 도자기인 '마시코야키(益子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853년에 시작된 도자기로, 초기에는 실용적인 주방용품 위주로 제작되었다. 이후 20세기 초, 민예운동(Mingei Movement)의 중심인물인 하마다 쇼지(濱田庄司)가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예술성과 창의성이 더해졌다. 하마다의 영향으로 마시코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도자기 마을로 발전하였으며, 그의 제자인 시마오카 타츠조(島岡達三)도 이곳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작가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 이곳에서 다양한 도예가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이어갔으며, MCAA6갤러리 등 마시코 지역 도예가들을 소개하는 중요 전시 공간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터전이 되었다.
백자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담백하고 절제된 미감을 지니며, 청결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자 세라믹의 매끄러운 표면과 은은한 백색은 꽃의 섬세한 형상과 잘 어우러지며, 조형물 전체에 순수성과 정결함을 부여한다. 이번 그의 아홉 번째 개인전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 되었다.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도자기에 담아내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으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