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첫 개인전 이후 한국조형 이념과 독창적 화풍으로
30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노화가의 열정과 신념”
1990년부터 「古談와 흔적」시리즈를 시작으로 「정지된 시간-化石」시리즈(1992)와 「정지된 시간-도자기」시리즈(2021)로 이어지는 연작을 통해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석의 신비를 추상적 회화로 재현하는 원로 서양화가 정봉근의 서른번째 개인전이 3월 14일(화)부터 19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B관에서 마련된다. 1995년 첫 개인전 이후 국내․외 주요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이어 온 작가의 작품전은 ‘30회’라는 기념비적인 의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담겨진다.
한학자이자 화백이며 서예가인 추전 김화수(秋田 金禾洙)는 그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두터운 마티에르의 어두운 흑색을 바탕으로 어탁(魚拓)을 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콜라쥬나 프롯타쥬를 원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포트리에(Foutrier)의 「人質」연작을 환기시키기도 하지만 그 발상과 모티브는 대단히 신선하고 놀랍다. 그가 어떻게, 왜 「물고기 화석」에 착안하여 작품으로 만들어 냈느냐에 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은 신비롭다. 그러나 여기에는 작가의 세심하고 조심스런 의도와 남모를 노력 등 고심의 흔적이 배어 있다. 자세히 보면 명암의 대조로 물고기나 식물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으며 가급적 붓과 나이프의 흔적을 배제하여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화면을 이끌고 있다.
작가가 구사하는 붓자국(Brush Work)과 얼룩, 반점의 흔적, 두터운 마티에르 등은 탓시즘(Tachism), 또는 앵포르멜의 표현기법이기도 하며 이미 세계적으로 유형화되어 보편적인 양상을 띄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 표면은 유화물감의 기름기가 제거되고 건삽한 느낌을 준다. 표면이 그러할 뿐 아니라 색채 역시 거의 무채색조로 검정색, 청재색, 회갈색, 모래색 등으로 화석이 지닌 실체감 조성에 부합된다. 화석의 질감 효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아크릴 등 혼합재료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은 고대 고분벽화에서처럼 우현하고 퇴락한 분위기와 신비로움이다. 그가 구사하는 색채는 가야나 신라 토기가 갖고 있는 색과 질감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이러한 정황에서 그려진 그림의 첫 느낌은 「우리의 것」이라고나 할 것으로-서양화에서 느끼는 위화감이 전혀 없다. 이점은 정봉근이 이룩한 하나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들은 한국화·서양화로 분류한다면 한국화로 불릴 성질의 것이며, 실로 「신토불이」에 딱 부합된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향한 작가가 우리 토양에 맞는 추상화의 한 전형을 만들어 냄으로써 가지는 의미는 실로 가볍지 않을 것이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환상으로 이끄는 그림들의 해석 또한 흥미로울 것이다. 억만 년의 시간을 지하에 묻혔다가 지상으로 나와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화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움과 꿈과 기억을 환기하는 힘을 가졌다.
화합하고 타협하려는 시대적 배경이 무언 속에 강한 힘을 주고 있어 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나도 한번 그의 작품 속에 합류하고픈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흡사 화석을 탁본한 듯 단색조 이미지의 강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는 화석을 차용에서 오는 시간성의 표상이다. 지질시대 퇴적암 속에 퇴적된 동식물의 형태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는 시각적 요소로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화석 속 달 항아리 형상은 구상적 이미지를 극복해 추상적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 주는 조형적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삶 그리고」시리즈 작품 2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