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따뜻한 숨결 같은 달 항아리의 미학”
도자기의 투박함을 고스란히 닮은 도예가 김판준은 40여 년 간 흙과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교육자와 작가라는 두 길에서 조금의 흐트럼도 없이 성실하게 이어오고 있다. 도예작품으로는 좀처럼 제작하기 힘든 대작 중심의 개인전을 20차례 개최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신라미술대전 ‘대상’, 경북도미술대전 ‘전체부문 금상’, 대구공예대전 ‘우수상’,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이 말해주듯 작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겸손과 우직한 끈기 그 자체였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감각을 달 항아리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전이 오는 3월 21일(화)부터 26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마련된다.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느낌이다.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 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의 민(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古今未有)의 한국의 미(美)로써 선조들이 달 항아리를 늘 곁에 둔 이유는 항아리처럼 늘 자신을 비우고 항아리처럼 무엇이나 담을 수 있음을 갖고자 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백자 달 항아리를 사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 이라는 찬사를 남겼으며 현재 그 도자기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요즈음 유명 백화점 명품코너에 백자 달 항아리가 버젓이 자리를 잡곤 한다. 달 항아리는 순결하고 맑은 영혼의 빛깔을 보여주며 푸근한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뜻하며 겸손과 포용의 정신이 느껴지며 맑고 깨끗한 빈 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민(民)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나쁜 집터에서 잘 풀린 자식을 없다고 한다. 당연히 가게가 어려웠는데, 놀랍게도 어느 날부터 승승장구하여 부자가 된 가문이 있었다고 한다. 풍수지리가도 사주관상쟁이도 주역박사도 점쟁이도 용한 보살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집의 내력을 묻고 살펴보니, 어느 날 달 항아리 한 점을 구입하여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즉, 그 달 항아리에서 기(氣)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림이든, 도자기든, 글씨이든 뭐 하나 운수 좋게 잘 구해 놓으면 복 짓는 천의 명당 하나를 집안에 두는 것과 다름없다.
작가 김판준이 달 항아리를 조선 백자의 정수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친화적인 심성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의 도자기에서도 유사한 미의식이 포착된다. 상호텍스트성을 유지하는 김판준의 도자기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한 형태미가 돋보인다. 안분자족(安分自足)함을 추구한 그의 미의식은 인공미보다는 자연미를 추구한다. 그것이 대체로 묵직하고 웅장하다. 원형의 지름이 95×95㎝인 접시가 가마에 들어가기 전에는 약 120×120㎝는 족히 넘었을 것이다. 형태를 지탱해줄 두께를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무게감이 짐작된다. 평생 흙으로 유희했지만 이때야 말로 김판준이 흙과 싸워 이겨야 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늬와 장식을 생략하고 흰색으로만 구워낸 백자 달항아리는 빛이 곱고 푸근하면서도 크기가 위용을 뿜어낸다. 게다가 원만한 형태는 겸손과 포용을 두루 겸비한 어머니의 따뜻한 숨결 같아 작가 특유의 손맛과 스킬을 가늠하게 한다. 백자 달항아리, 3족 수반과 벽걸이 큰 접시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