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중한 기억들을 아름다운 회화로 그려가는
여류화가의 감성적 이미지의 표상”
일상이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나날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벌어지고 있지만, 모두의 일상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무료하게 느끼는 평범한 일상
에서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경험하며, 사고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작가 정기호는 이러한 일상에서 채집된 다양한 사물을 자신만의 조형 의식과 색채로 그려 가고 있다. 점점 복잡해지고 다원화돼 가는 현대사회에서 무심코 놓쳐버리는 자아의 내면을 창의적으로 재현해내는 그녀의 용기는 창작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름다운 일상의 기억들이 잘 정리된 일기장처럼 정갈하게 선보일 것이다. 30여점의 유화로 마련되는 이번 개인전은 4월 25일(화)부터 30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마련된다.
작가 정기호는 그동안 무심코 보았던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무의미하게 지나쳐 버리기보다는 유의미한 가치를 찾아가는 노력은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과정이 되었다. 매일 아침 햇볕이 잘 드는 작업실에서 앉아 창 너머 바라보는 일상의 풍경은 작가가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이다.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고, 아름다운 풍경을 현장 스케치하며 희열을 경험하게 되며, 등굣길 노란색 횡단보도를 건너는 유치원생들로부터 사랑을 발견한다. 작업하기 전에는 보잘것없는 일상의 사물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 어떤 대상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모티브는 어찌 보면 특별함이 없는 일상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예술적 감성과 결합해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결국,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정은 작가가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며 특별함을 기억하는 보물 상자였던 셈이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작가는 졸업과 함께 POSCO에 입사해 포항제철소 조경업무를 담당했다. 풀과 꽃, 나무와 조형물 등 인공적 배열이 주는 기하학적 패턴을 연구하며 주어진 업무에 매진했다. 조경은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고 기쁨과 위안을 느끼며 고갈된 영혼을 충전시켜 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분야로 내적 감성을 자연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육체적으로는 고단하고 힘든 작업이지만 자연에 몰입해 느끼는 감성적 즐거움과 행복감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순간의 소중함이 되었다.
직장인과 아내, 어머니라는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에 충실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016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부전공하며 익힌 조형 감각으로 빈 캔버스 앞에 선 그녀는 일상에서 보고 느꼈던 순간의 감정이 담긴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전통 회화의 구성과 기법을 습득하며 선배 화가들이 가졌던 시대적 미의식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참된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사물을 관찰하는 객관적 안목과 주관적 창조성을 가지고 현대를 바라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예술적 가치관 모색에 몰두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친 한순간의 찰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성을 가지고 기억이라는 감각으로 편집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 나갔다. 작가는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풍경을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면에 감추어진 자아의 흔적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두렵게만 느껴졌던 미술에 대한 지식과 본질, 표현기법과 색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확실성은 믿음으로 바뀌어 나갔다.
미술 입문 과정에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인물화는 빼어난 소묘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대상의 표정과 몸짓, 감정까지 담아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오랜 시간 반복된 학습을 통해 사실화의 규범과 질서를 배우며 인물화 제작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서양화가 류성하의 절대적 지도 덕분이었다. 류성하는 1980-90년대 현대인의 표정을 통해 한국적 리얼리즘을 발견하고 역사의식과 순수미감을 감성적으로 표출한 대표적인 작가다.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는 안목과 주관적 창조성을 가지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화풍을 직간접적으로 익힌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 감각이 투영된 인물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의 ‘그리다’는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을 그림으로 뱉어내는 작업으로 작품 속에는 순수한 자신만의 감정이 짙게 투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2021년 《대구미술대전》에 출품한 ?아침 햇살?은 이른 아침 가판대에 앉아 장갑을 파는 상인의 모습을 통해 노점상의 고달픈 삶과 세월의 흔적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그리고 202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는 코로나19의 엄중한 보건 위기 속에서도 강한 책임감으로 수술대에 오른 의료진을 담아낸 ?집중?을 출품해 현실성과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표현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외 풍경화와 정물화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 에너지는 사실적 묘사와 색채의 리드미컬한 구성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움의 표상이 되었다. “색채는 인간의 육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초인간적인 힘이며, 살아있는 본질이다. 작품에 나타나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의 눈은 매혹되고, 인간의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며 촉각이 된다.”라는 추상회화의 창시자인 칸딘스키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은 색채의 조화를 더욱 강렬하게 증폭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