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연 초대전
23/10/22 13:22:32 대백프라자갤러리 조회 1573
전시명 유지연 초대전
작가명 유지연
전시장소 A관
전시 기간 2023. 10. 24(화) ∼ 11. 05(일)

“작가 유지연은 삶의 무게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신의 인연(因緣)을

회화작업을 통해 필연적 우연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 유지연은 일상을 살아가며 일어나는 수많은 인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옷감을 짤 때 씨실과 날실이 겹쳐지듯 그녀의 아크릴물감은 만남과 추억이 교차해 하얀 캔버스 위에 두터운 흔적을 남긴다. 직조의 얇은 실이 겹쳐지는 것처럼 아크릴물감이 무수히 겹쳐 독창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의 화풍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액션페인팅을 연상케 한다. 그녀는 물감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성의 변화와 색의 조화를 끊임없이 연구해 나간다. 일정한 선의 형태로 흘러내린 아크릴물감을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교차하고 무한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한다. 중첩된 단색조의 이미지는 마치 거대한 선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다양한 삶의 기억이 서로 얽히어 깊이를 더해준다. 작가는 뚜렷한 형상을 재현하는 작업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 내재 되어 있는 이미지를 조형화하는 작업에 몰두한 지도 벌써 10여 년이 넘었다.

 

작가 유지연의 표현기법과 유사한 미술 양식은 19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액션페인팅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 1956)의 드리핑(dripping)기법은 종래의 회화개념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회화를 창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큰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붓이나 나이프 등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거나 부어버리는 기법을 사용했다. 드리핑이나 막대기를 이용해 거칠고 강력한 터치를 유동적이고 격한 움직임으로 표현했고, 직선, 곡선, 점, 뿌리고, 찍기 등으로 감정을 표출했다. 이는 전통적인 화면의 부분적 분할과 구성이 사라진 획일적인 평면 회화의 새로운 시도였다.

 

폴록은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은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림을 끝냈을 때 무엇을 했는지 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액션페인팅에서 캔버스는 대상을 재현하고 분석해서 표현하는 공간으로써의 의미보다 행위 하는 장소로 보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를 액션페인팅의 대상이자 실체로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세계는 무의식적 행위에 나타나는 우연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내적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방법인 자동기술법을 이용해 외부의 자극을 차단한 채 내면에서 무의식적 손놀림으로 선의 자유로움과 물감을 뿌리는 행위, 로울러로 문지르는 행위 등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지연의 회화는 잭슨 폴록처럼 무의식적 손놀림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선들의 형태와 그 선들의 겹침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면들과 부분적으로 사용된 물감의 번짐으로 드러나는 우연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내면에 내재된 감정을 끌어내고 드리핑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지만, 무의식의 우연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개입된 필연에 의한 우연성도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별성을 띠고 있다. 작품 구상 단계에서부터 색채와 화면구성을 계획하고 독창적 마티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는 캔버스 밑칠을 수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듯, 쉼 없이 반복하는 드리핑 작업을 통해 의도된 색의 리듬을 찾게 되면 그때 스스로 작업을 멈추게 된다. 이는 작가의 미의식과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적 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활동의 근본적 동기는 내적 욕구와 정신적 충격에 의한 감정체험에서 비롯된 ‘내적 필연성’을 의미한다. 추상미술의 창시자인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 1944)는 물질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 실재성인 내적 필연성을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계속 강조했다. “모든 대상은 고유한 생명과 또 거기에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작용을 가진 존재이며, 예술가는 이 심리적 작용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심성을 그 많은 결과에서 차단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물질 속에는 추상적이며 창조적 정신이 숨겨져 있고, 물질 속에 존재하는 정신은 물질을 통해서 가장 많이 내면적인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 유지연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직관과 내면적 통찰이 만들어 낸 필연적 우연성”이다. 학창 시절 화선지에 자기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형태의 상(象)과 다양한 색채를 끄집어내어 2차원의 화면에 담아내었던 추상 작업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욕망의 무한한 표출이었다. 한국의 토속적 형상과 대지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먹과 짙은 갈색의 채색은 만남과 인연,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상징하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이성적 논리보다 감성적 직관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이러한 정서는 창작의 원초적 토양이 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가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작가는 감성적 직관에서 비롯된 인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며 시간과 공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만남을 필연적 인과성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연(因緣)’이라는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불교적 의미에서 보면 인연은 결과를 낳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인(因)이고 외부에서 이를 돕는 간접적인 원인을 연(緣)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과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고 가능한지를 이해하는데 적용되는 고차원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유지연은 옷감을 짤 때 무수히 많은 씨실과 날실이 서로 교차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얻어지는 것처럼, 서로 침범하고 중첩된 작품의 형상 속에서 인연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다. 서로 뒤엉키고 섞인 혼란스러운 배열보다는 서로의 내면에서 비롯된 깊은 사랑과 배려가 조화롭게 만나는 작업과정이 마치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인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오늘도 밤늦은 시간까지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엎드려 작업에 관한 탐구와 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해나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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