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가 갖는 전통의 힘을 현대적 달 항아리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대구의 젊은 도예가 4인의 시대정신은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창작의 진정한 가치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달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 했다. 달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일상에서는 시와 노래와 그림 등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상징하는 존재였다. 마치 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달 항아리라고 불리던 조선 백자가 있다. 백자 달 항아리는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던 그릇의 하나이다. 어찌 보면 밋밋한 듯이 보여서 처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나 지극히 평범하고 꾸밈없는 그 이유 때문에 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이 드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데도 참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항아리이다. 이처럼 전통 달 항아리를 현대적 조형미로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움직임은 오늘날 현대 도예가들에 의해 본격화되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젊은 도예가 4인은 매년 전통과 현대가 접목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해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갖고 있다. 올해에는 각자들의 개성적인 달 항아리를 한자리에 모은 작품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제2회 美陶會展(미도회전)-꿈꾸는 달항리》라는 제목으로 오는 7월 2일(화)부터 7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한다.
달 항아리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가장 활발히 제작된 것으로 높이 40cm 이상이며 최대 지름과 높이가 거의 일대일 비례를 이루고 몸체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것이다. 이 커다란 항아리는 그 크기 때문에 한 번에 만들지 못하고 위와 아래의 부분을 따로 빚어 붙인 뒤에야 비로소 하나의 모양으로 완성하게 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선의 유교적 분위기에 따라 질박하고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조선 백자는 시대의 미의식이 담긴 생활 예술의 결정체이다. 하얀 맨살을 여지없이 드러내야 하는 극도로 정제된 질감, 조형의 원천을 이루는 엄정한 선과 절제된 색의 발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실제 생활에 잘 쓰이도록 견실하게 제작되고 장식이나 기교가 없는 단순한 형태에 담백한 우윳빛의 백색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점이 현대에 이르러 세계 도자 속에서 조선 백자가 갖는 가치의 재인식이 이루어지는 이유라고 보여 진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전통 도자기법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성과 실험성이 가미되어 현대도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다. 기존 도자형식과 내용을 변화시켜 새로운 조형예술을 추구해 나가는 젊은 도예가들의 이번 달항아리 작품전은 기존 도예작품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현대도자의 물성을 함께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오늘에도 전통을 무시한 새로운 양식은 있을 수 없다. 조선시대 달 항아리는 외형적으로는 둥근 선이 후덕하고 넉넉하면서도 적당한 굴곡미가 있으며 그 내면에는 겸손과 온유함을 담은 우리 민족의 심성이 담겨 있어서 그러한 본질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고 단지 겉모습만을 닮은 솜씨 좋은 복제품을 만든다면 보는 이들은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번 작품전은 ‘시대의 진정한 우리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재현된 작품을 통해 달 항아리의 새로운 의미를 일깨워 줄 것이다.
대구공예품대전 『은상』 수상 등 각종 공모전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검증받은 작가 ‘김진욱’은 흙의 물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갈라짐과 트임을 이용해 질박함과 원초적 생명력을 담아내고 있다. 흙 본연의 진실성을 과장 없이 조형화시키는 그의 작품과정은 물레성형으로 작품을 완성한 후 가마의 속성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경북 성주에서 ‘도고도예’를 운영 중인 작가 ‘남선모’는 백자원토를 이용해 제작한 백토소지에 다채로운 포도문양을 그려 넣어 포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항아리 포도 무늬를 그려 넣은 작품은 마치 문인화의 한 부분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장작 가마에서 소성된 분청작품은 투박한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주고 있다. 문경대학교에 출강을 하며 구미에서 ‘도예공방 아홉’을 운영 중인 작가 ‘신현규’는 흙의 성질과 특성을 자연스럽게 적용해 실용성과 심미성이 돋보이는 달 항아리를 선보인다. 한편 다양한 주제로 도자조형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도예가 ‘이숙영’은 인체묘사와 그 위에 채색을 통해 다채로움을 형상화 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달 항아리에 접목시켜 기존 달 항아리 현대도자조형의 색다른 묘미를 만나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2011년부터 김진욱, 남선모, 신현규, 이숙영은 《고운그릇전》을 시작으로 매년 전시를 개최해 왔다. 2023년부터는 《美陶會(미도회):아름다운 도예전시 모임》을 결성해 올해로 두 번째 회원전을 마련하는데, 현대사회에 흙을 접하기 쉽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도자 및 실용그릇 등 다채로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해 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