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장우의 회화는 대부분 자연의 풍경을 붓 터치로 묘사된 빛의 효과를 통해
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특히 빠른 붓질의 점들로 형상을 표현하는 자연풍경은
그의 작품에서 흥취와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1988년 첫 개인전 이후 지역화단에서 30여 년 동안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창전(蒼田) 이장우(李章雨)는 대구화단의 대표 작가이며 예술 행정가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5년부터 6년간(17-18대) 대구미술협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권익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앞장섰으며, 21세기 대구 미술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간 인물이다. 이번 초대전은 고희를 기념해 그의 작품들을 통해 아직 식지 않은 창작의 열정을 확인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창전 이장우의 초대전》이 11월 5일(화)부터 11월10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마련된다.
작가 이장우는 1954년 경북 군위군 효령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후 대구로 진학했다. 어린 시절 뛰어난 미술 실력으로 일찍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영남중학교 재학시절 미술 교사로 근무하던 서창환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미술 입문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 사제간의 애틋한 정으로 맺어진 인연은 2014년 서창환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작가에게 미술은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켜주고 힘든 삶에 위안을 건네준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몇 해 전부터 효령면에 있는 고택을 보수해 ‘창전 미술관’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전시장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하얀 도화지에 뭉툭한 크레파스로 풍경화를 즐겨 그리던 까까머리 소년이 이제는 고희(古稀)라는 적잖은 나이에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회상하는 사유의 시간을 마련한다.
2020년 이후 제작한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자연이 주는 따스한 색감과 빛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과 함께 자연 속에서 성장해서인지, 유독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는 일을 즐겼던 작가의 비망록과 같은 삶의 흔적들이다. 20세기 초 기존의 전통적인 작업방식에서 벗어나 자연광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의 진동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이러한 빛의 변화에 따른 시각적 인상을 색채로 표현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을 오마주(Homage) 하듯 이장우의 그림에는 관념적 색채의 표현 방법에서 벗어난 음률적 감성이 가득하다. 마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평생을 걸쳐 화폭에 구현한 지베르니 꽃과 물의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 찬란한 태양 빛의 흐름이 강한 생명력으로 표출되어 자연의 경외감을 자아내는 듯하다. 빛과 공기의 색감에 충실했던 회화의 본질을 풍부한 작가정신과 에너지로 표현하고, 기존의 미학 이론과 매체 이론을 접목시킴으로써 자연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미의식의 확장이 보여주는 치유 회화를 구현해 낸다. 마치 점묘법을 연상케 하는 그의 표현 기법은 다양한 색의 작은 점을 이용해 시각적 혼색 효과를 극대화했다. 색 이론에 기반을 둔 색채분할 주의를 자신만의 차별화된 회화로 소화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1992년 이장우의 회화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보여준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그는 농촌 풍경을 재현하는 데 있어 표현 감정을 속사(速寫)로 처리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충실한 묘사를 지양, 순간적인 표현 감정을 가능한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대부분 나이프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부적인 묘사가 쉽지 않은 나이프는 경직된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반면에 순간적인 감정표현에 적합하다. 주저 없이 던져지는 나이프의 움직임은 활기찬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빠른 호흡이 느껴지는 나이프의 터치는 당연히 두터운 질감을 만들어 낸다. 표현의 정직성은 시간적인 쾌감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기법과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 그의 작품에서는 역동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 표현 감정은 빠르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나이프의 직선적인 조형 어법은 신체적인 힘이 포인트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는 자신의 회화적 감성을 열어주는 자연을 거친 나이프로 묘사하고 내적 심상을 표출하려는 실험적 작가정신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투박한 표현기법과 채도 낮은 색감이 주종을 이루었던 90년대 작품들에 비해 근작들은 세련된 기교와 정제된 아름다움이 주는 균형미가 현대적 감성을 자극한다.
예술은 무한한 자기표현의 세계이며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술의 치유적인 측면, 즉 조형 활동을 통해 인간 정신을 승화시키는 것은 예술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특히 예술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활력을 더해주고 마음의 평화가 깃드는 등 심리적 변화와 자극에 큰 변화를 주기도 한다. 치유적 역할에 대해 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미술은 인간이 가지는 무의식의 세계와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표출하여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억제된 감정과 사고를 표출하여 치료적 효과를 얻게 된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건강한 정신세계로 자연을 관조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역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 이장우의 경우 이처럼 예술이 갖는 치유적 역할을, 자연풍경을 통해 성실히 수행해 오고 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 주관적 시점으로 자연풍경의 풍부하고 찬란한 빛을 담아낸다. 밝은 색채와 따사로운 배경의 작품을 마주하면 햇살 가득한 풍경이 주는 평화로운 감정을 여과 없이 경험하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감정이 정화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빛의 유희’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회화를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의 본질을 순수하게 표현하고 나아가 단순 풍경이 아닌 빛과 연계된 색채를 주관적 표현이 만들어내는 사색의 창이며 위로의 공간이다. 이처럼 작가 이장우의 숭고한 자연풍경은 순수한 감정의 수용체로서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물해 준다. 이번 전시는 작가 특유의 색채감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회화 작품 50여점이 선보인다.